성씨별 배경 소개

10개 족보의 성씨와 가문의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1. 김해김씨

김해김씨는 크게 가락계와 우록계로 나뉜다.


김해김씨 - 가락계

시조 : 김수로왕(金首露王)

가락국은 9촌장이 다스렸는데,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구지가’를 부르자 여섯 알을 얻었고 제일 먼저 태어난 아이를 수로(金首露, 42~199.3.23)라고 하였다. 그 달 보름에 왕으로 삼고 나라 이름을 가락(대가야)라고 하였다. 김해김씨는 이 수로왕을 시조로 하며, 가락김씨라 부르기도 한다. 김해김씨의 중시조는 수로왕 12세손인 김유신(金庾信) 장군이다.

김해 김씨는 경파(김녕군파), 사군파(감무공파), 삼현파(휘관파)로 나뉜다. 세 파의 파조는 경파의 김목경(金牧卿, 사군파의 김익경(金益卿), 삼현파의 김관(金管)이다(뿌리를 찾아서: www.rootsinfo.co.kr).

경파는 김목경의 네 아들이 횡성공파, 안경공파, 참판공파, 석성공파 등 현재 11개 파로 나뉘었다. 삼현파는 김관의 후손 중 ‘청도삼현’인 김극일, 김일손, 김대유 등, 4대에 걸쳐 3인의 현인이 났기 때문이다. 김극일의 6형제들은 군수공파, 집의공파, 한림공파, 진사공파, 녹사공파, 진의공파 등으로 분화한다(정복규, 2012)

김해김씨의 조선시대 과거합격자는 모두 1292명(계통 구분 없이 모두 합산)이다. 문과 130명, 무과 536명, 사마시 471명, 역과 59명, 의과 39명, 음양과 16명, 율과 33명, 주학 8명이다(정복규, 2012).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김해김씨(가락)는 1985년 총 892,330가구 3,767,065명, 2000년 총 1,295,080가구 4,124,934명이다(통계청 인구조사).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링크-김해김씨


김해김씨-우록계

시조 : 김충선(金忠善)

시조 김충선(金忠善,1571~1642, 자는 선지, 호는 모하당)은 본래 일본인으로 이름은 사야가(沙也可)이다. 임진왜란 때 참전한 장수로 상륙 1주일 만에 귀순하였다. 귀순 후에는 조선의 장수로 전공을 세웠고 권율과 한준겸이 정이품을 추천하고 선조가 직접 김충선으로 이름을 하사하였다. 그의 후손들은 경북 달성군 가창면에 많이 거주하며 우록동에 살았기 때문에 우록김씨라 부르기도 한다(뿌리를 찾아서: www.rootsinfo.co.kr).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김해김씨(우록)는 1985년 총 26,902가구 125,277명, 2000년 총 59,880가구 199,544명이다(통계청 인구조사).

2. 남평문씨

시조 : 문다성(文多省)

시조 문다성(文多省)은 신라 자비왕(20대)때의 사람으로, 전남 나주 남평의 장자지라는 연못가에서 갓난아이를 발견하였는데 아이가 5세에 글을 깨우치고 무략이 뛰어나며 총기가 있어 성을 문으로 했다는 설이 있다. 문다성은 지증왕에 중시아랑, 진흥왕에 대국사, 진지왕에 대아랑대국사에 올랐다. 현재에도 남평면에는 장자지가 있으며 바위에 문암이라 새겨 문씨 시조의 탄생지임을 알리고 있다. 시조의 묘소는 전남 나주군 남평면 덕용산 능사동에 있었으나 없어졌다. 장자못가에 있는 장연서원에서 매년 음력 9월에 향사한다(뿌리를 찾아서: www.rootsinfo.co.kr).

1세조는 고려 숙종 때 남평군에 봉해진 문익(文翼)이다. 문익은 문공인, 문공원, 문가관, 문공유 등 4형제가 현달하여 가문이 번성하였으며, 문극겸(고려 무인), 문익점(목화씨의 전파자) 등을 배출하였다(정복규, 2012).

남평문씨의 조선시대 과거합격자는 모두 139명이다. 문과 36명, 무과 86명, 사마시 80명, 역과 4명, 음양과 1명, 율과 1명, 주학 1명이다(정복규, 2012).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평문씨는 1985년 총 82,069가구 343,700명, 2000년 총 118,491가구 380,530명이다(통계청 인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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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산송씨

시조 : 송유익(宋惟翊)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를 지냈으며, 여산군에 봉해졌다. 그 후 후손들이 여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선대는 중국 당나라 때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의 후손 송자영이다. 송자영은 3형제를 두었으며 장남 송유익은 여산송씨, 둘째 송천익은 은진송씨, 막내 송문익은 서산송씨의 시조가 되어 우리나라 송씨의 근간을 이뤘다(정복규, 2012). 묘소는 여산 문수동에 있으며 매년 동지에 향사 한다(뿌리를 찾아서: www.rootsinfo.co.kr).

여산송씨는 6세손에서 크게 송휘의 원윤공파, 송방영의 밀직공파, 송원미의 소윤공파, 송린의 지신공파, 송서의 정가공파로 나뉜다(정복규, 2102)

여산송씨의 조선시대 과거합격자는 모두 357명이다. 문과 74명, 무과 51명, 사마시 229명, 음양과 1명, 율과 2명이다(정복규, 2012).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여산송씨는 1985년 총 48,212가구 200,334명, 2000년 총 72,763가구 232,753명이다(통계청 인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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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주류씨

시조: 류습(柳濕), 류혼(柳渾), 류지(柳池)

전주류씨는 류습(柳濕), 류혼(柳渾), 류지(柳池)파가 있다. 시조를 달리하는 ‘습, 혼, 지’ 세파의 유래와 관계에 관하여 방대하고도 수많은 논쟁이 있으며 이를 정확히 정리하기란 매우 어렵고도 난해하다전주류씨낙봉공파종중: (ryu-nakbong.kr/xe/jeonjuryuorigin). 다만 류습파가 다수이며 류혼과 류지파는 소수인 것으로 보인다.

류습파의 시조 완산백(完山伯) 류습(柳濕)의 생몰년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사위 대제학 심효생(1349∼1398)이 고려 충정왕1(1349)년에 출생한 기록으로 보면 전주류씨는 약 7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집성촌은 전북 전주시, 경북 안동군 임동면이다.

류혼파는 1993년 발간된 “전주류씨호은공파세보”에 의하면, 신라 때 각간을 지낸 류기휴(柳其休)를 비조(鼻祖)로 하고, 류혼(柳渾)을 시조(始祖)로 한다. 인구는 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류지파는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전주최씨족보에 시조 최아의 사위이자 과거합격자 류익지의 증조부인 류지를 시조로 한다. 류지파는 전주와 대전 지방 등에 있으며 인구는 알 수 없다(뿌리를 찾아서: www.rootsinfo.co.kr).

전주류씨의 조선시대 과거합격자는 모두 476명이다. 다만, 류습파만 자료가 존재하며, 문과 97명, 무과 79명, 사마시 103명, 음양과 197명이다(정복규, 2012).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주류씨는 1985년 47,383명, 2000년 총 19,008가구 61,650명이다(통계청 인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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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진주정씨

시조: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 정신(鄭侁)

진주정씨(晋州鄭氏)는 본고장인 경남 진주에서 강씨(姜氏)·하씨(河氏)와 더불어 삼대토성이다. 원래 진양군이 1995년 진주시로 통합되었다. 이진주정씨는 "진양팔정(晋陽八鄭)"이라는 말이 통용될 만큼 파계의 전모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진양팔정"이란 문헌에만 전할 뿐 정예(藝), 정자우(子友), 정장(莊), 정헌(櫶), 정신(侁)을 시조로 하는 5파 외에는 정확한 기록이나 문헌이 없어 파악되지 않는다(성씨정보: www.surname.info).

진주정씨는 고려의 개국에 참여한 집안으로 고려 때 이미 수많은 인재를 냈으며 조선 개국 후에도 탄탄한 인맥을 형성하였다. 진주는 고려조 역대 선조들의 세거지이다(정복규, 2012).

<예계(藝系), 충장공파> 시조 정예(藝)는 고려 통합 삼한벽상공신 광록대부 ·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냈다. <자우계(子友系), 은열공파> 시조 정자우(子友)는 고려 호장을 지냈고, 6세손 신열은 고려 현종 때 진양부원군에 봉해졌고, 자우의 8세손 진경은 중랑장을 지냈다. <장계(莊系), 공대공파> 시조 정장(莊)은 고려 말엽에 통종 첨지중추원사를 지냈고, 그의 4세손 척(陟)은 조선 태종 때 판윤을 지냈으며, 5세손 성근(誠謹)은 성종 때 직제학을 지냈다. <헌계(櫶系), 어사공파> 시조 정헌(櫶)은 고려 말에 문하시랑 평장사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성씨정보: www.surname.info).

진주 정씨의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는 총 59명이다. 문과 59명, 그 외 상신 1명, 대제학 2명이다(정복규, 2012).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주정씨는 1985년 55,464가구 231,289명, 2000년 74,777가구 238,505명이다(통계청 인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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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함양박씨

시조 : 박언신(朴彦信)

시조 박언신(朴彦信, 속함대군)은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셋째 아들이다. 그가 속함대군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였으나 문헌이 없어져서 고증을 하지 못하고 고려 때 예부상서를 지낸 박선(朴善)을 중시조로 하고 1세 조상으로 하였으며 속함이 함양으로 개칭되어 본관을 함양으로 하였다. 전라지휘사 김경손을 나주에서 포위한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응천군에 봉해진 박신유의 여섯 아들에서 6파로 갈라졌으며 흔히 '육지파(六之派)' 라고 한다(뿌리를 찾아서: www.rootsinfo.co.kr).

본관은 경상남도 함양이며, 중시조 박선의 묘소는 경남 함양군 함양읍 사금동에 있다. 함양박씨는 10세손에 이르는 약 3백 년 동안 많은 현관과 무장을 배출하였다(정복규, 2012).

함양박씨의 조선시대 과거합격자는 모두 333명이다. 문과 65명, 무과 34명, 사마시 193명, 역과 3명, 의과 1명, 음양과 28명, 율과 9명이다(정복규, 2012).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함양박씨는 1985년 총 25,113가구 103,220명, 2000년 총 38,788가구 123,688명이다(통계청 인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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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함양여씨

시조 : 여어매(呂御梅)

여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 주나라 무왕이 강태공 망을 여나라에 봉하고 호를 여상이라고 하자 후손들이 성을 여씨라고 했다. 그의 후손 여불위의 아들 여영은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며 진시황의 아들 여부소와 여호해가 있었으며 여부소는 아들 여몽과 여자앵이 있었다.

여몽의 후손 여어매는 중국 내주 사람이었는데 당나라 희종 때 황소의 난을 피하여 877년(신라 헌강왕 7년) 신라에 들어와서 전서를 지내고 벽진(성주)에 대대로 살았다. 그의 후손으로 여임청, 여광유 형제가 있었다. 여임청의 후손으로 여양유, 여자열, 여자장, 여자혁이 있었는데 여양유와 여자열은 본관을 성주로 하였고, 여광유의 계통과 여자장, 여자혁은 본관을 함양으로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모두 합본하여 여씨 전국종친회를 구성하였다(뿌리를 찾아서: www.rootsinfo.co.kr).

함양여씨의 조선시대 과거합격자는 모두 124명이다. 문과 33명, 무과 11명, 사마시 80명이다(뿌리를 찾아서: www.rootsinfo.co.kr).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함양여씨는 1985년 6,028가구 25,115명, 2000년 8,040가구 25,667명이다(통계청 인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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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함평모씨

시조 : 모경(牟慶)

시조 모경(牟慶)은 중국 관서지방 홍농 사람으로서 송나라에서 이부상서를 지내고 북송의 마지막 왕조인 흠종(欽宗) 때 대사마 대장군(大司馬大將軍)에 올랐다. 1125년(고려 인종 4) 척신(戚臣) 이자겸(李資謙)이 반역을 꾀하고 왕비를 시켜 왕을 독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을 때 모경이 사신으로 왔다가 이 음모를 저지하고 왕권(王權)을 바로 세우는데 공을 세워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서훈되었다. 그 후 귀국하여 홍농후(弘農侯)에 봉해졌으나 금(金) 나라가 송경(宋京)을 침입하고 휘종과 흠종 두 황제를 납치해 가자 고려에 도움을 청하러 나왔다가 송나라가 패망하고 귀국길이 막히자 고려에 귀화하여 그대로 머무르게 되었다. 고려에서는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모경을 후대하여 평장사(平章事)의 벼슬을 내리고 모평(牟平, 함평) 군(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함평이라 하였다(뿌리를 찾아서: www.rootsinfo.co.kr).

시조 모경의 직계 후손들은 주로 고려 때 벼슬을 하였다. 유명인물로는 모순(牟恂)이 대표적이다. 1417년(고려 태종17) 문과에 급제하여 합천군수를 지냈는데 선정을 베풀어 굶어 죽는 자가 없고 도둑이 없었으며 부모를 극진히 공양하여 전설적인 효행을 남겼다(뿌리를 찾아서: www.rootsinfo.co.kr).

함평모씨의 조선시대 과거합격자는 모두 5명이다. 문과 3명, 무과 1명, 사마시 1명이다(뿌리를 찾아서: www.rootsinfo.co.kr).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함평모씨는 1985년에는 3,656가구 15,539명, 2000년에는 5,546가구 17,939명이다(통계청 인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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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행주기씨

시조 : 기우성(奇友誠)

시조 기우성(奇友誠)은 기자의 49세손으로 백제 은조왕때 시중으로 입사했다.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애왕(41대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금마(현재의 익산)군에 마한을 세웠으며 마한 말기의 원왕에게 세형제가 있었는데 우평은 고구려에서 태원 선우씨, 우성은 백제에서 행주 기씨, 우경은 신라에서 청주 한씨가 되었으며 기우성의 후손들이 본관을 행주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대의 기록이 전하지 않아 고려 인종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기순우(奇純祐)를1세조로 하고 있다(뿌리를 찾아서: www.rootsinfo.co.kr).

행주기씨의 조선시대 과거합격자는 모두 91명이다. 문과 22명, 무과 16명, 사마시 50명, 역과 2명, 의과 1명이다 (성씨정보: www.surname.info).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행주기씨는 1985년에는 총 5,244가구 21,756명, 2000년에는 총 6,660가구 21,536명이다(통계청 인구조사).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링크-행주기씨